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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풍경

[에리히 케스트너] 기다리기 - 외투깃을 세워도 추위가 가시지 않을 때

by 너의세가지소원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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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은 아직

녹색의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천년 전에 생명을 잃은 듯이

마른 풀들은 메마른 회색으로

들판을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야흐로

푸르른 목초가 돋아나오고

방울꽃이 피어나는 일이

정말일까요?

 

정년퇴직한 잎새들은

버터빵의 포장지처럼

여기에서 버석

저기에서 버석거립니다.

바람이

때로는 낮은 소리로

때로는 높은 소리로

윙윙

마른 숲 위를 스칩니다.

 

마른 들판에

한 쌍의 부부가 앉아

봄을 기다립니다.

생명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압니다.

올해도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을.

 

두 사람의 기분은

이해합니다만

염려가 됩니다.

두 사람이

감기에 걸릴 일이.

 

두 사람은 스푼으로

컵 속을 저었습니다.

어두워진 후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만 말없이

마주앉았습니다.

 

 

이 시는 겨울의 끝자락에 놓인 들판의 정경과 두 사람의 기다림을 묘사하며, 봄이라는 희망을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메마른 회색의 들판을 통해 자연의 고요함과 생명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직은 녹색의 기운이 보이지 않는 들판은 천년 전의 생명이 잃은 듯한 느낌을 주며, 자연의 침묵과 생명 없는 풍경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의 분위기는 곧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메마른 들판 위에도 푸른 목초가 돋아나고, 방울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회복력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며, 아무리 황량한 겨울이라도 그 끝에는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 속의 부부는 그런 희망을 간절히 기다리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생명의 이치를 아는 사람들은 매년 봄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앞의 황량한 풍경은 그들의 마음에 불안을 자아냅니다. 이 불안은 시인의 염려로 나타나는데, 두 사람이 감기에 걸릴 것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부부가 마주 앉아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자연의 변화와 함께 인간의 내면 역시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두 사람이 컵을 저으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며, 그들은 봄을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을 서로의 존재로 달래고 있습니다. 시의 마지막에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로를 받는 듯한 모습은 깊은 연대감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시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력,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인간의 희망과 불안을 그려내며, 절망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시인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과 그 안에서 느끼는 희망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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